천주교 우면동 성당 즐겨찾기

두어 달 전부터 매주 일요일 오전 시간을 온전히 보내고 있는 곳.
지금 교리 공부를 하고 있고, 이 추세로 열심히 다닌다면 아마도 12월 중에 세례를 받게 될 것 같다.

친구에게 "정말 니가 믿을 수 없는 깜짝 놀랄 일을 내가 하게 됐다. 나 성당 나간다." 라고 했더니,
순례길을 걸은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귀국해서 성당에 나간다며 예상밖으로 그리 놀라지 않았다.

사실, 나는 생각하는 방법이 불교에 더 가까운 편이라 
한동안 한참 탄압 받던 봉은사에 둥지를 틀 생각을 내심 하고 있었지만
이전 회사 보스로부터 최근 새로 오신 신부님이 정의구현사제단이시라 마음이 불편하다는 말을 듣고
냉큼 성당으로 방향을 틀었다. 
종교를 가질 것을 고민하던 시점에 그로 하여금 그 말을 내게 하게 한 것도 소중한 인연이니까. 

그리고, 그 판단에 아주 만족한다. 
지난 두어달 간, 강론 시간마다 한번도 빼먹지 않고 들은 말은 다름 아닌
"가진 것 모두를 내놓고 하느님 말씀에 귀기울이십시오"
"재물과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양립할 수 없습니다"
였으니,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성당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내게 하느님, 예수님은 어떤 의미일까. 
지난 일요일 교육 시간에 들은 말인데,
'하느님'으로 통일하기 전 그를 부르던 명칭은 '야훼' 였고, 그 뜻은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한다.
내 그럴 줄 알았다. 
스스로 있는 자=스스로 그러한 것, 즉 자연 아닌가. 
여기서 자연이란 일반적인 의미의 nature 가 아니라 universe에 가까운 것이겠지만. 
이루 셀 수 없는 별들이 매일같이 서로 부딪히지 않고 나름 질서를 가지고 굴러다니게 하고 
그악한 종자인 '사람'들이 아무리 뻘짓을 해도 지구를 아직 푸르게 빛나게 하는,
-물론, 곧 흙과 물과 공기가 복수에 들어가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아무리 깊이 생각해도 알 수 없고 누가 설명해 준다 한들 이해할 수 없을 그, 
절대적이나 또한 상대적이기도 한 원리.
어디에나 있으나 또한 어디에도 없는, 
그것을 만약 하느님이라 부를 수 있게 허락한다면, 예수님은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한 선지자?
로 이어질 수 있고,
나는 그런 그들을 마음 깊이 경외하고 사랑하며, 그들에게 내 몸과 마음을 온전히 맡기고 싶고,
그들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노력하겠다 정도가 나의 생각이다.

이것도 지난 시간에 들은 이야기인데, 
예수님은 부활해서 제자들에게 모습을 보이고 여러 기적을 40여 일간 행한 후에
하늘나라로 영원히 가셨다고 한다. 
허걱. 
이건 정말 잘 모르는 초보 예비 신자의 엄청나게 불경스러운 생각인데,
다른 00들처럼 49일 간 구천을 떠돌며 못다한 뜻을 이루려 노력하다가
제자들이 충분히 준비가 되었음을 알고 비로소 영면에 들어가신 건 아닐까? 

인도와 네팔의 인삿말인 나마스테는
"내 안의 신이 당신 안의 신에게 감사드립니다."라는 뜻이란다.
나와 당신 안에는 신이 있고, 우주가 있다.  

많이 옆으로 샜다. 
여튼 이 곳은 당분간 내가 아~주 즐겨 찾게 될 곳이며, 아울러 내게 큰 숙제를 주고 있는 곳이다. 
세례 전에 반드시 해야 한다는 고해성사 생각만 하면, 중간에 그냥 포기하고 싶어진다.  
사흘 낮 사흘 밤을 고백해도 끝이 없을 내 죄를 어떻게 한담. 
나는 왜 이 곳을 40대부터 다니게 된 것일까. 
하고 싶은 것 다 하다가 세상 뜨기 직전에 와서 속죄해도 늦지 않았을 것을.  
후회가 가슴을 친다.
그리고, 이 곳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자전거를 다시 타게 되었는데
자전거 타던 첫날 있었던 해프닝은 정말,
아무리 진지하려고 해도 사건사고가 터지는 내 평생을 집약한 거나 다름 없었다.   
자전거를 쇠기둥에 갖다 대고 자물쇠를 훽 돌리는 순간 기분이 찜찜하더니 
집에 가려고 자물쇠를 아무리 돌려도 말을 듣지 않았다. 
너무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게 되어 비밀번호를 잊은 것이다.
땡볕에 30분간 쭈그리고 앉아서 연관 숫자 50여 개를 조합한 끝에 겨우 집에 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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